인지심리학 관점에서 바라본 언어 학습의 차이가 있습니다. 공부는 잘하는데 영어는 안 되는 사람의 뇌 구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어려워합니다. 특히 다른 과목은 잘하는데 유독 영어만 힘들어하는 경우, 단순히 노력 부족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언어는 지식이 아니라 기술이며,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학습 성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기억과 사고 체계를 기반으로 학습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이 관점을 통해 영어가 왜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언어는 ‘지식’이 아니라 ‘기술’입니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거나,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 중에도 유독 영어 회화나 실전 영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수학이나 과학, 심지어 국어 논술은 뛰어난 성과를 내면서도 영어만큼은 ‘이상하게 안 된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노력 부족’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경우에는 영어를 배우는 방식과 그 사람의 사고 구조,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학습을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선언적 기억, 즉 ‘지식’을 저장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절차적 기억, 즉 ‘기술’을 익히는 방식입니다. 국어나 수학 문제 풀이처럼 규칙과 내용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학습은 선언적 기억에 해당합니다. 이는 암기와 이해 중심의 학습이며, 일반적으로 지필고사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강한 학습자들이 뛰어난 결과를 보이게 됩니다.
반면, 영어 회화나 듣기, 말하기처럼 반복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이 필요한 학습은 절차적 기억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영역은 자전거 타기나 피아노 연주처럼 몸에 익히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즉, 머리로 아는 것과는 별개로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과 시간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공부를 잘했던 사람일수록 암기 중심의 학습에 익숙하기 때문에, 절차적 기억을 요구하는 영어 말하기나 듣기에서 좌절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말이 안 나온다”는 표현은 바로 이 두 기억 체계 간의 간극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영어 실력을 키우려 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영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영어라는 ‘기술’을 뇌가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영어 학습의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암기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말하고 듣고 반복하는 ‘훈련’으로 전환하는 것이 절차적 기억 체계를 활성화시키는 핵심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이 이론을 이해하면 빠르게 자신에게 맞는 학습 전략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잘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해온 사람일수록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런 완벽주의적인 태도는 학문적인 영역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언어를 배울 때는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외국어를 배울 때는 틀리고, 어색하게 말하고, 수정하면서 익히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습자들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문법을 검토하고, 단어 선택을 고민하느라 실제로 말을 꺼내기 어려워합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언어를 ‘의사소통’이 아닌 ‘시험’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틀리면 창피하다”, “이 문장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은 두려움과 불안을 유발하고, 결국은 말문을 막아버립니다. 특히 시험 중심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세대일수록 실수를 실패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외국어에서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입니다. 실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점점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익혀가는 것이 언어 습득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어는 문화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된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직역이 아닌 맥락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사람일수록 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똑같은 질문에도 정답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언어는 논리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잠시 내려놓고,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영어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결국 영어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말해보는 용기와 반복입니다. 잘하려는 마음보다는 틀리더라도 시도하는 태도, 부끄러움을 견디는 인내, 그리고 실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영어 말문을 트는 열쇠가 됩니다. 학문적인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그 성공 경험이 오히려 언어 학습에서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새로운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자신의 학습 스타일에 맞는 영어 전략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사고 방식과 학습 스타일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해온 사람일수록 자기만의 학습 루틴과 전략이 체화되어 있고, 그 방법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그동안의 학습 방식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특히 듣기와 말하기는 반복과 노출, 그리고 감정적 안정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다 유연하고 감각적인 학습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책상에 앉아 문법 문제를 푸는 것보다, 매일 5분씩 영어로 혼잣말을 해보거나, 유튜브 영상의 대사를 따라 말해보는 그림자 말하기(shadowing)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평소에 좋아하는 주제나 관심 분야를 영어 콘텐츠로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장 구조와 표현을 익히는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실전에 활용하기 쉬운 방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감정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잘하려는 부담감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언어 학습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됩니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실수도 학습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회화 파트너나 튜터를 선택할 때는 내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는 사람, 실수를 부드럽게 교정해주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습자 입장에서는 ‘실수를 허락하는 분위기’가 가장 빠르게 말문을 트게 합니다.
또한 인지심리학적으로 볼 때, 반복된 노출과 예측 가능한 패턴이 학습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같은 구조의 문장을 연습하거나, 자주 쓰는 표현을 루틴처럼 반복해서 연습하는 방식은 뇌가 영어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이는 절차적 기억을 자극해 실제 상황에서도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렇게 뇌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학습 스타일에 맞게 전략을 조정하면 영어는 점차 부담이 아닌 일상 속 하나의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왜 나는 영어가 안 될까’라는 자책이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편할까’를 찾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진짜 영어 실력의 시작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